집안시내에서 태극마크가 새겨진 수원갈비를 보았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3시 30분경 도착한 환도산성

환도산성은 국내성 북쪽 2.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환도산성은 최고봉이 해발 676m0|다. 높은 산에 자리하여 지세가 험하고 집안평야에서 북쪽으로 가는 2개의 길을 지키고 서 있어 관문의 역할도 한다.

위치와 지형으로 보아 국내성의 방위성으로서 가장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천험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동서북 3면의 성벽은 평면으로 보면 둥근 능선 위에 쌓았는데 성밖은 깎아 내린 듯한 절벽이고 성안은 비교적 넓은 경사지로 되어 있다. 남면은 지세가 비교적 낮지만 밖에서 성안이 들여다보이지는 않는 고로봉식 산성이다.


환도산성을 소개한 비석

많은 부분이 허물어져 비록 형체만 남은 산성이지만 성의 줄기가 산쪽으로 뻗어 넓은 산을 둘러 자연적 요새가 되었으리라. 사진 중간의 큰 돌은 산성 안쪽에서 부터의 물을 빠지게 하는 배수구로서 선조들의 디테일한 손길이 엿보인다.

환도성은 집안 서북쪽 2.5km 지점의 해발 676m 환도산에 위치한다.
현재는 남측성벽과 점장대 등 일부만 남아있다.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고구려의 도성은 평지에 있는 국내성과 산속에 있는 환도산성이 세트로 되어있다.

점장대에서 바라본 복원중인 환도산성 왕궁터

환도산성터 대해 설명해 주시는 우리 3조 조장 서강대학교 이희진박사님


골짜기에만 대충만든 산성이 아닌 산등성이를 따라 산으로 이어지는 산성임을 보여주는 모습

많은 부분이 허물어져 비록 형체만 남은 산성이지만 성의 줄기가 산쪽으로 뻗어 넓은 산을 둘러 자연적 요새가 되었으리라. 사진 중간의 큰 돌은 산성 안쪽에서 부터의 물을 빠지게 하는 배수구로서 선조들의 디테일한 손길이 엿보인다.


산성 아래의 고구려고분군(산성하 고분군)


아파트가 들어선 국내성터 (서쪽 성벽, 西城) 왼쪽 끝자락에 치성이 자리한다.

국내성에 대해 설명하시는 이희진 박사님


오회분 5호묘


넓고 완만한 평지위에 다섯 개의 산처럼 높고 큰 봉토묘 (흙으로 봉한 묘)가 동서로 길게 배열되어 있는데 마치 다섯 개의 대형 투구와도 같아서 오회분(다섯개의 투구 무덤)으로 불리운다.

내부는 습기가 가득차 고수동굴 분위기가 날 정도로 보존이 잘 안되어 있다. 2년전에 왔을 때 보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는 분도 계시고, 위에 색을 조잡하게 덧칠한 흔적이 보인다는 분도 계셨다.



5시가 넘어서야 호태왕비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살던 주민들 다 쫒아내고 주변을 공원화시키고 잘(?) 가두어 두었다. 

유리방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공안이 감시하고 있다.


태왕릉

태왕릉 입구는 막혀있다.

태왕릉(좌하)과 태왕비(우상) 위치 비교 (출처: 구글지도)

태왕비 옆에서는 설명을 제지하기 때문에 관리원이 안보이는 저 멀리 화장실 옆에 모여 광개토태왕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 이희진박사님


장군총


큰 돌을 정교하고 일정하게 깎아 왕릉을 만들어낸 고구려인들의 솜씨가 새삼 놀랍게 느껴지는 순간 이었다.


장군총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이희진 박사님


두부가 둥둥 떠있는 맛있는 된장국과 함께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우린 백두산행 기차를 타기위해 통화역으로 향한다.

통화역에서 이도백하 역까지 7시간 30분가량을 기차로 이동하게 된다.


나는 비위가 좋아 화장실에서 대충 씻었는데...다들 씻지도 못하고 오늘 밤 기차에서 묵어야 한다.

다들 이정도 쯤은 감안하고 오신분들이라 불평은 한마디도 없었으나 역시 집떠나면...고생이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을 했고 집행부를 따라 다들 분주히 움직인다.

기차는 출발해서 아침 5시 30분 도착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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