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일정을 위해 아침일찍 모여 버스를 기다렸다. 어제 여유있는 일정을 보내서인지 모두 얼굴 표정이 밝았다.

오늘의 메인 방문지는 화룡현의 청산리이다.
8시경 이도백하를 떠나 우리는 화룡으로 향하기 전에 화장실이 급한분들이 많았다..


이곳은 휴게소가 많지 않아 주로 주유소의 화장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결국 가이드의 힘으로 이도백하 번화가의 한 호텔 화장실을 이용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전간호사님이 건네주신 힘의 원천이라는 이름모를(?) 약을 한알 얻어먹고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했다.

화룡으로 향하던 길에 안도현 송강진이 나타났다. 조선족이 사는 곳이라 한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농촌의 모습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증축중인 안도현송강진중심소학교와 유치원도 도 볼수 있었다.
송강은 과거 안도현의 현 정부가 있던 곳으로 백두산 가는 사람들이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1919년 3월 28일에 한인학생들과 주민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할 정도로 3.1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곳이기도하다.(박환교수의 만주유적답사기 중에서)

11시 14분경 화룡현을 나타내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옆길로 198km를 가면 다시 백두산도 갈 수 있다.

화룡으로 들어섰을 때 유독 눈에 띄던 '염씨짜장면집'간판이다. 중국에서 먹는 짜장면은 무슨 맛일지...

낮익을 과일을 많이 팔고 있던 서산시장 풍경

기나긴 여정 속에 독립군가를 다시 들여다 보며 암송해본다.

청산리 기념비로 가는길에 지나가는 화룡시 송월저수지 이다. 여기는 저수지가 우리나라의 댐규모이다.  대륙의 스케일이 느껴졌다.

12시경 청산리 대첩 승전 기념비에 도착했다. 벌판 한가운데 있는 언덕 위에 잘 보이게 조성 되어 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영령을 기리는 행사를 갖고 청산리 유적지에 대해 조규태 부단장님과 친일진상규명위원회의 서민교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좌측의 한문으로된 설명판을 누가 깼는지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기념 촬영 후 우리는 당시 항일투쟁을 벌였던 투사들의 정신을 기리며 점심식사를 주먹밥으로 대신하였다.

사진을 다시 보고 있노라니 큰 덩치에 허기질까봐 작은 주먹밥 3분의 1정도를 뚝~ 떼어 저에게 말없이 건네주시던 1조 조장 김인호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다시한번 생각납니다.

기념비를 떠나기전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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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시내에서 태극마크가 새겨진 수원갈비를 보았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3시 30분경 도착한 환도산성

환도산성은 국내성 북쪽 2.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환도산성은 최고봉이 해발 676m0|다. 높은 산에 자리하여 지세가 험하고 집안평야에서 북쪽으로 가는 2개의 길을 지키고 서 있어 관문의 역할도 한다.

위치와 지형으로 보아 국내성의 방위성으로서 가장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천험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동서북 3면의 성벽은 평면으로 보면 둥근 능선 위에 쌓았는데 성밖은 깎아 내린 듯한 절벽이고 성안은 비교적 넓은 경사지로 되어 있다. 남면은 지세가 비교적 낮지만 밖에서 성안이 들여다보이지는 않는 고로봉식 산성이다.


환도산성을 소개한 비석

많은 부분이 허물어져 비록 형체만 남은 산성이지만 성의 줄기가 산쪽으로 뻗어 넓은 산을 둘러 자연적 요새가 되었으리라. 사진 중간의 큰 돌은 산성 안쪽에서 부터의 물을 빠지게 하는 배수구로서 선조들의 디테일한 손길이 엿보인다.

환도성은 집안 서북쪽 2.5km 지점의 해발 676m 환도산에 위치한다.
현재는 남측성벽과 점장대 등 일부만 남아있다.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고구려의 도성은 평지에 있는 국내성과 산속에 있는 환도산성이 세트로 되어있다.

점장대에서 바라본 복원중인 환도산성 왕궁터

환도산성터 대해 설명해 주시는 우리 3조 조장 서강대학교 이희진박사님


골짜기에만 대충만든 산성이 아닌 산등성이를 따라 산으로 이어지는 산성임을 보여주는 모습

많은 부분이 허물어져 비록 형체만 남은 산성이지만 성의 줄기가 산쪽으로 뻗어 넓은 산을 둘러 자연적 요새가 되었으리라. 사진 중간의 큰 돌은 산성 안쪽에서 부터의 물을 빠지게 하는 배수구로서 선조들의 디테일한 손길이 엿보인다.


산성 아래의 고구려고분군(산성하 고분군)


아파트가 들어선 국내성터 (서쪽 성벽, 西城) 왼쪽 끝자락에 치성이 자리한다.

국내성에 대해 설명하시는 이희진 박사님


오회분 5호묘


넓고 완만한 평지위에 다섯 개의 산처럼 높고 큰 봉토묘 (흙으로 봉한 묘)가 동서로 길게 배열되어 있는데 마치 다섯 개의 대형 투구와도 같아서 오회분(다섯개의 투구 무덤)으로 불리운다.

내부는 습기가 가득차 고수동굴 분위기가 날 정도로 보존이 잘 안되어 있다. 2년전에 왔을 때 보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는 분도 계시고, 위에 색을 조잡하게 덧칠한 흔적이 보인다는 분도 계셨다.



5시가 넘어서야 호태왕비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살던 주민들 다 쫒아내고 주변을 공원화시키고 잘(?) 가두어 두었다. 

유리방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공안이 감시하고 있다.


태왕릉

태왕릉 입구는 막혀있다.

태왕릉(좌하)과 태왕비(우상) 위치 비교 (출처: 구글지도)

태왕비 옆에서는 설명을 제지하기 때문에 관리원이 안보이는 저 멀리 화장실 옆에 모여 광개토태왕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 이희진박사님


장군총


큰 돌을 정교하고 일정하게 깎아 왕릉을 만들어낸 고구려인들의 솜씨가 새삼 놀랍게 느껴지는 순간 이었다.


장군총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이희진 박사님


두부가 둥둥 떠있는 맛있는 된장국과 함께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우린 백두산행 기차를 타기위해 통화역으로 향한다.

통화역에서 이도백하 역까지 7시간 30분가량을 기차로 이동하게 된다.


나는 비위가 좋아 화장실에서 대충 씻었는데...다들 씻지도 못하고 오늘 밤 기차에서 묵어야 한다.

다들 이정도 쯤은 감안하고 오신분들이라 불평은 한마디도 없었으나 역시 집떠나면...고생이다.


이윽고 기차가 도착을 했고 집행부를 따라 다들 분주히 움직인다.

기차는 출발해서 아침 5시 30분 도착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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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의 홍원호텔에서 객실에서 바라본 단동시내 모습이다. 실제로 나가서 보면 우리나라 도시와 별다를게 없어보이는 겉모습을 보여준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나가본 단동의 거리는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내를 지나다 보게 된 한국사람 부끄러운 한글 광고판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오늘의 첫 경유지는 압록강 조중철교 였다. 사실 어제 오후에 마지막으로 들렸어야 했던 곳이었으나 빠듯한 일정상 바로 호텔로 가버렸기 때문에 짬을 내서 들렀다.

일정관계로 아쉽게도 유람선 탑승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허락되어... 빨리 티켓을 사들고 압록강 조중철교 답사를 하기로 했다.

좀 더 가까이서 북한을 볼 수있게 된 것이다.

철교위로 올라섰다. 이 다리만 건너면 북한이라는 생각에 뭉클한 마음이 들은건 나 뿐일까? 


철교의 중심부근에서 왼쪽의 북한과 우측의 중국 강가를 비교해 보면 발전모습이 너무 확연하다.


철교는교각3개를 남겨두고 끊겨있었다. 저너머 휴양지의 대관람차와 함께 북한이 보인다.


다리 우측 방향의 북의 압록강각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TV에서 많이 보았던 끊긴 철교의 폭파된 부분과 당시 포탄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압록강을떠나 하로하 방향으로 가면서 우측 창너머로 이성계가 회군 했던 위화도를 볼 수 있었다.



박비서께서 강추하여 휴게소에서 구입한 삥홍챠~! 첫맛이 까스명수맛 펩시, 그리고 없어서는 안될 생명수 생수


급커브길에서 사고차량들로인해 길이 막히히기도 했다. 이 곳 사람들은 한국보다도 운전을 좀 더 거칠게 하는 것 같다. 다만 차량이 적어 다행일 뿐이었다.(사고 승용차는 국산 브랜드라 더욱 눈길이 갔던~)

원래는 압록강변을 따라서 바로 집안현으로 가는 일정이었으나 그 길이 공사를 하는 관계로 영전이라는 지역을 지나 태평초,하로하,혼강,고마령,유수림자를 차례로 지난후에 집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태평초는 대한광복군총영 오동진장군이 중심으로 활동을 했던 항일 전적지 마을이 있다.

이번 대장정 단장님이신 수원대학교 박환교수님의 관전현지방에대한 설명


단장님의 의암유인석,이진룡,오동진장군의 활동지역에 대한 설명


집안현 주변의 독립군 활동에 대한 단장님의 설명

유인석장군이 활동하던 보달원 지역에 대한 단장님의 설명

주변 상가 간판 속의 한복입은 모델은 한국배우 이응경씨였다.


하로하조선족인민정부 게시판


간만의외지사람들을 쳐다보시는 하로하현지어르신들


하로하에대해 설명해주시는 단장님


하로하 주변에서 논농사를 짓고사는 조선족 이야기

논이 펼쳐지는 하로하지역과 맛있게 군것질거리 드시는 유교수님과 금순씨

고구려 유적과 혼강유역에 대한 설명

다리 옆의 나무뿌리로 만들어진 특이한 간이화장실. 물론 재래식


저 다리로 혼강(파저강)을 건너면 집안으로 간다. 다리건너 좌측 계곡이 고마령전투전적지이다


필수 코스라는 묘향산 식당에서 대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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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만주에서 함께 지낸 2009 청산역사대장정의 벅참과 감동, 그리고 대원들과의 추억을 그냥 머리속에 두면 점점 사라질 것만 같은 아쉬운 마음...
대장정 참가 신청서에 참가 기록을 자료로 남겨 활용하겠다던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교원팀의 청산리역사대장정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페이지의 포스팅을 남겨봅니다.


박환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강의시간에 들었던 '만주지역한인유적답사기'속의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는 것. 여행이 아닌 항일독립투쟁을 펼쳤던 중국 만주일대의 유적지들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점들은 '2009 청산리 역사대장정'을 뿌듯함과 설레임속에 출발하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대장정 경로가 대략의 직선거리만 저정도이니 정말 대장정이다.


1일차(8월3일)

첫 날 일정을 위해 6시 30분까지 인천공항으로 모이라고 했다. 모임 장소 부근으로 가니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매고 있는 등산복 차림을 한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 1주일간 대장정을 할 분들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대장정에 필요한 물품을 지급 받고 복장을 갖추니 어느새 하나의 목적을 가진 대장정 팀이 되어 있었다. 
단장님과 부단장님의 인사말과 집행부의 안내에 따라 짐을 부친후 9시 40분에 대련을 향해 출발 했다. 내 옆자리에 앉으신 국사편찬위원회의 장선생님은 이륙장면을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담고 계셨다. 

대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여순으로 향했다.

빠듯한 일정을 짐작케했다.



여순감옥 입구에서 단체사진 


안중근의사 순국 장소 앞에서 한상권 교수님으로 부터 설명을 듣고 안중근의사에게 참배를 드렸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도 많은 유묵을 남겼다. 

안중근 의사의 흉상이 모셔진 기념 건물안에는 유묵들이 전시되어 있다.


순국장소로 끌려가는 안의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벽에 붙여놓았는데 얼굴부분의 선명치 못한 부분을 어린아이 낙서 하듯이 대충 윤곽을 그린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의있게 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이곳이 우리 땅이 아니라는 아쉬움과 함께 느껴진다.

참배를 마치고 단장님의 안내에 따라 감옥안 답사를 시작하였다.


사형장의 교수형대


당시 수감자들이 입었던 수형복


서대문형무소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여순감옥


감옥 내부 집기들


안중근의사 투옥 장소 앞에서 설명중이신 박환 단장님


1-14.gif

관광객들의 감옥 내부 이동 경로


감옥에 수용되어 있던 이들을 탄압하던 도구들


감옥에 수용되어 있던 이들을 탄압하던 도구들

전시물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것은 형틀과 고문 도구들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이었을지 짐작이 가능했다.


단재 신채호선생께서 투옥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앞에서 대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죄수들이 수용소내에서의 수공공장에서 강제노동에 활용되었던 도구들


안중근의사는 순국직후 북쪽 문(사진 우측)으로 수레에 실은채 내보내져 사진 왼쪽의 크레인이 위치한 부근 쪽에 임시로 묻혔다.
중국이 여순감옥 복원에 발맞춰 지난 개방하던 해인 1971년부터 86년까지 5차례에 걸쳐 감옥 공동묘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 묘지를 찾아보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6년 7월에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까지 가세하여 중국과 함께 조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묘지를 찾아내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우리나라 조사발굴단도 2008녀 3월 하순부터 2개월간 사진속의 아파트와 크레인주변을 조사했으나 실패했다.
“내가 죽은 뒤 내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이 유언은 동생들에게 한 유언이지만 지난 100년동안 우리모두에게 남긴 유언인 것만 같은 기분이든다.


많은 선열들이 희생 되었을 교형장

교수형이 마쳐지면 바로 나무통에 넣어 매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형이후 나무통 안의 시신


교형자 대기실이 사형장 좌측에 두개가 있었으며 한사람이 들어가 서있을 정도의 크기 이다.


처형된 시신을 옮기는 다른 수용자들의 처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디오라마


여순감옥은 미리 지어진 러시아식 회색 벽돌 건물과 일본이 확장하여 지은 빨간 벽돌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여순감옥 공식 홈페이지를 가면 북한식 말(조선어)로도 소개가 되어 있는데, 여순감옥을 '여순일러형무소'로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감자를 소개한 '추구와 항쟁'페이지에는 '민족해방과 반파쇼투쟁의 걸출한 대표자'라는 표현으로 안중근의사와 신채호선생을 맨 아래 소개하고 있다.
여순감옥 공식 홈페이지 가기

여순 감옥 답사를 마치고 안중근 의사가 재판 받았던 여순 관동주법원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은 1906년 9월 1일 여순감옥과 동시에 설립되어 1906년부터 1935년까지 총 21376건의 판결을 내린 곳이다.


여순 관동주법원으로 들어가는 대원들

안중근의사가 판결을 받던 관동지방법원의 재판정 모습

안중근의사가 판결을 받은 재판정은 법원 중앙 건물 좌측 통로를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었다. 재판정은 안의사 재판 당시 모습이라고 한다.


공판 당시의 안중근(우측)

 

법원을 나와 중국에서의 첫 식사를 위해 차에 올랐다.
낮선 중국의 여순 풍경은 창가에서도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인근에 바다가 있어 해군이 주둔하고 있다.


13시 50분경, 첫 번째 중국 식당이라 기대(한국사람인데 그래도 입맛에 맞춰주겠지)와 두려움(향이 강하고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음)으로 입구에 들어섰다. 생선비린내와 야릇한 향이 코를 찔렀다.

드디어 식사!
사진으로만 보면 먹음직 스럽다.

우리나라 중국집처럼 회전식 식탁이다.

작은 밥그릇과 젓가락이 식기의 전부다. 하나씩 먹어 보았지만 작심하고 넘기지 않으면 삼켜지질 않았다.


복숭아 장수가 100위안짜리를 받아 들고 위폐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엄청난 옥수수 밭은 계속 이어지고 피로감은 점점 밀려온다.


18시 20분, 대련에서 단동으로 가는 사이에 하나 밖에 없는 대고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많은 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근심을 비웠고 버스기사는 차를 닦는데 여념이 없다.

화장실은 의외로 깨끗했으며 핸드 드라이기는 절전차원에서인지 작동이 되지 않았고, 우리나라 당구장에 많이 있는 롤타월이 걸려 있었다.


멜라닌 어쩌고 하며~ 박성완 비서가 나눠준 대륙의 제크(?)... 허기를 달랬다.


점점 해는 저물고...


20시 40분경에 드디어 단동의 호텔에 도착했다. 미리 조사한 바로는 3성급호텔이며 실내에 인터넷이 되는 PC가 배치된 곳이었으나... -_-;


호텔방을 배정받고 9시경 늦은 저녁식사를 할 수있었다.


 

배가 고팠을까? 비위가 맞춰지고 있는 것일까? 점심 때 보다는 식사를 좀 더 할 수 있었다.
이 때의 기분으로는 일주일간 살이 엄청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사후 단장님이하 모든 대원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내일부터 일정에 대해 결의를 다지고 나서 11시가 넘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낮선 땅에서의 첫 숙박은 생각보다 괜찮았으며, 신기하게도 하루사이에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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