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를 등졌던 여성, '여자 밀정 배정자'의 삶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의 화려했지만 어두웠던 삶과 친일 행적을 알아보겠습니다.

1. 배정자의 생애: 불우한 소녀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로
성장 배경과 일본과의 첫 인연
배정자는 1870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아전(衙前)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배분남(裵粉男)입니다.
아전(衙前)
아전은 조선시대에 각 관아에 소속되어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하급 관리를 말합니다. 중앙 관리가 아닌 지방 토착 세력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민씨 정권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로 인해 고아가 된 배정자는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대구에서 활동하던 일본 상인 마에다 쵸스케(前田長助)에게 발견되어 그의 손에 이끌려 1885년, 15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사다코(貞子)'라는 일본 이름을 얻고, 마에다의 양녀가 되어 일본어와 여러 학문을 배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으로 그는 곧 일본 정계 거물들의 눈에 띄게 됩니다.
친일 행적의 시작: 이토 히로부미와의 만남과 밀정 활동
배정자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일본의 초대 총리대신이자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어 그의 수양딸이 되었고, 이는 배정자가 단순한 일본 유학생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됩니다.
이토의 후원 아래 그는 전문적인 스파이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1894년 일본으로 망명한 개화파 김옥균을 암살하라는 밀명을 받고 상하이로 보내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그의 밀정 활동은 조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밀정(密偵)
밀정은 비밀리에 다른 나라나 적대 세력의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하는 사람, 즉 스파이 또는 첩보원을 의미합니다.
- 고위 관료 포섭 및 정보 수집: 1905년 전후, 배정자는 서울에 '뽀뽀뽀 다방'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릿집을 열고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유창한 일본어와 사교술, 매혹적인 미모를 무기로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와 외교관들에게 접근하여 국가의 기밀 정보를 빼내 일본에 넘겼습니다.
- 을사늑약 체결 관여: 그는 을사늑약 체결 과정에서 대한제국 대신들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통역을 맡으며 일본의 입장을 교묘하게 전달하고, 조약 체결을 망설이는 대신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의병 활동 방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배정자는 의병 부대의 규모, 위치, 무장 상태 등의 정보를 일본군에 넘겨 의병 활동을 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고종 황제 감시: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후, 배정자는 고종 황제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일본 정부로부터 막대한 토지와 재산을 하사받았으며,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친일 밀정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광복 이후와 비참한 최후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도 그의 친일 행위는 계속되었습니다. 일제의 통치에 협력하며 부와 권력을 유지했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그의 화려했던 삶에 종말을 고했습니다.
해방 후,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하여 친일파를 처벌하고자 했습니다. 배정자는 당연히 1호로 체포된 여성 친일파였습니다.
잠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협력하며 민족을 배반한 행위를 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입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 친일 세력의 방해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체되었습니다.
반민특위 법정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를 일부 부인했지만, 그의 죄는 명백했습니다.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병보석으로 잠시 풀려났다가, 그해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나라를 뒤흔들었던 요화의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2. 배정자의 후손들은?
- 아들, 전유화(田有和)
배정자는 첫 번째 남편인 전재식(田在植)과의 사이에서 아들 전유화를 낳았습니다. 전재식은 일본 유학 중 배정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게이오 의숙 재학 중 병으로 일찍 사망했습니다. 아들 전유화는 의료인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의 구체적인 삶이나 후손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현송자 - 딸, 현송자(玄松子)
두 번째 남편인 현영운(玄暎運)과의 사이에서는 딸 현송자를 두었습니다. 현송자는 빼어난 미모와 일본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사교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한제국 학무국장을 지낸 윤치오(尹致旿)와 결혼했으나, 연희전문학교 학생이던 이철(李哲)과 불륜 관계로 인해 이혼했습니다. 이후 현송자는 이철과 재혼하여, 남편이 오케(OK)레코드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철은 남인수, 김정구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을 배출하며 연예 사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지만, 일제 말기에는 친일 연극과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현송자는 이철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영호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후손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카 혹은 숨겨진 딸, 배구자(裵龜子)
배정자의 조카로 알려진 배구자(1905~2003)는 한국 최초의 서양 무용가이자 동양극장 등을 설립한 극장 경영자입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배정자의 오빠인 배국태의 딸이지만, 일각에서는 배정자가 이토 히로부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배구자의 동생 배한라가 "언니가 이토 히로부미와 고모 배정자 사이의 딸이었던 까닭에"라고 회고한 적도 있어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켰습니다.
배구자는 일본의 유명한 곡예단에서 기예를 배우고,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한국 근대 무용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후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역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3. 배정자에 대한 현재의 역사적 평가
배정자는 '민족을 팔아넘긴 매국노', '악질 친일파'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친일인명사전 등재: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친일 행적이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명백히 입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친일인명사전
일제강점기(1904년 ~ 1945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인물들의 목록과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역사 연구와 교육을 위해 민간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오랜 기간의 연구 끝에 발간했습니다.
- 친일 행위의 질적 문제: 배정자의 행위는 단순히 시류에 편승하여 부역한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핵심부와 직접 연결되어 국가의 주권과 안보에 관련된 핵심 정보를 넘기고, 국권 피탈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물론,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격동의 시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는 동정적인 시각도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개인의 생존을 넘어 국가와 민족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쳤다는 점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배정자는 자신의 안위와 욕망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부정적 인물로 확고히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역사 앞에서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는가'에 대한 깊은 교훈을 남깁니다.
'역사 > 친일반민족행위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문 귀신' 노덕술, 단죄 받지 않은 추악한 친일 경찰 (43) | 2025.08.12 |
|---|---|
| 반민특위 체포 1호, 매판자본가 박흥식 (31) | 2025.08.11 |
| 독립운동가에서 친일의 길로, 최린 (17) | 2025.08.10 |
| 을미사변의 조선인 협력자, 우범선 (10) | 2025.08.09 |
| 강화도 조약의 숨은 조력자, 1호 친일파 김인승 (4) | 2025.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