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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3

나혜석이 바라본 섣달, 정월 초하루, 그리고 당시 여성들의 고단한 삶

1919년, 1월 21일부터 2월 7일까지 『매일신보』에 「섣달 대목」이란 주제로 4회, 「초하룻날」이란 주제로 5회, 모두 9점의 만평을 연재되었다. 여성들의 일상 생활을 중심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섣달과 일 년을 시작하는 한가로운 초하룻날의 풍경을 담고 있다. 집안의 모든 여자들은 늙고 젊고에 관계없이 가사 노동에 분주하다. 특히 빨래하고 다듬이질하고 다림질하고 솜 둬서 꿰매는 일을 차례로 자세하게 묘사한 것에서 옷 꿰매는 것이 명절 맞이의 가장 큰 일일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그 일을 맡아 해내야 하는 여성들에게 과중한 노동이라고 하는 나혜석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신문기사 본문 해석 평상아침은 열한 시 아니면 열두 시에나 먹는 이주사 집은 오늘 아침에는 처음으로 아침상을 일찍이 받았다. "바..

역사 2024.02.25

나혜석, 결혼과 이혼 그리고 사랑

나혜석 (1896~1948)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하였다. 그녀의 삶은 그림과 글, 시와 운동, 그리고 사랑과 이혼으로 가득했다. 이 글에서는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혜석은 1920년 5월 10일, 변호사이자 외교관이었던 김우영과 결혼했다. 그들의 결혼식은 당시의 일간지에도 보도되는 세레모니였다. 김우영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전도유망한 인사였다. 나혜석은 김우영의 6년간의 구애를 받아들여, 이미 결혼 전력이 있는 그와 서울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평범하지 않았다. 나혜석은 결혼하기 전에 김우..

역사 2024.01.29

나혜석에 대해서

I. 나혜석과 가족 1) 부친 나기정나기정(羅基貞, 1863년~1915년 12월 10일)은 대한제국과 조선총독부의 지방 관료이다. 본관은 나주이다. 나씨 가문은 19세기 말부터 지방관을 역임하거나 재산을 축적한 가문으로 자리를 잡았고,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에 거주하였다. 수원 지역에서는 이 집안을 ‘나 부잣집’ 혹은 ‘나 참판 댁’이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참판 댁은 증직(贈職)에 의한 호칭으로 보고 있다. 나기정은 나영완(羅永完)의 3남으로 형 기원(基元)과 기형(基亨)의 동생이다. 1900년 경기도 관찰부 주사를 지내는 등 대한제국의 관리로 근무하다가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전인 1909년 시흥 군수로 임명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도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자리를 옮겨 시흥 군수로 다시..

역사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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