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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의 성립과 발전
    역사 2024. 1. 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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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총 금관(출처 : 해외문화홍보원)

    1. 신라사의 이해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시조는 성()이 박()이고, 이름이 혁거세(赫居世),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 4월에 즉위하여 거서간(居西干)이라 하였는데, 그 때 나이가 13세로 나라이름을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

    통치체지는 유리왕 9년에 6부의 이름을 양부사량부본피부 등으로 바꾸고,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통치체제가 정비되었으며, 지방통치체제도 지방분권적 간접지배체제에서 중앙집권적 직접지배체제로 변화해 갔다.

     

    2. 신라사 연구의 어제와 오늘

    신라 초기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은 주로 광복 이전 일본인 학자들이었는데, 이들은 대개 삼국사기신라본기 초기기록을 조작되거나 허구적인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광복 이전 이병도의 연구에서는 급량부와 사량부를 각기 박씨와 김씨로 보았고, 1952년 김철준의 연구에서는 6개 씨족 중 급량부만이 경주에 존재하여 김()()의 이부체제(二部體制)를 주장했다.

    (중략)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는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제기되었던 부체제론과 1980년대 초에 등장한 부체제부정론이 재대결하는 양상을 보여 서로 대립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3. 신라사의 쟁점 및 검토

    1) 신라의 상고기년과 진한소국 정복

    현재 학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허구론을 비판하면서 대두한 수정론과 긍정론이다.

    고고학의 연구성과가 존중되어야 하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며,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전한 오봉(五鳳) 원년(57 B.C.)에 신라가 건국되었다는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이 절대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삼국유사에서는 고본을 인용하여 6부 사람들이 나라를 세울 것을 논의한 시기를 건무(建武) 원년(A.D. 25) 혹은 건원(建元) 3(138 B.C.)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본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삼국유사의 저자가 본 사료에는 사로 6촌의 주민들이 나라를 세울 논의를 한 시기를 건무 원년 혹은 건원 3년으로 적어놓은 기록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 고본이 구삼국사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확언 할 수는 없다.

    25년에 나라를 세울 것을 논의하고 그로부터 혁거세가 13세 되는 해에 신라가 건국되었다면 신라의 건국연대는 37년이 된다.

    (중략)

    이명이국의 입장에서는 신라본기에 소개된 소국은 신라가 3세기 말 이전에 정복한 소국이며, 삼국지에 전하는 소국은 3세기 후반 이후 4세기말 이전에 신라가 정복한 오늘날 경북 북부지역에 있었던 소국들이라는 견해이다.

     

    2) 신라의 국가형성과 부체제

    1930년대 이래 한국고대의 국가발전단계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있어왔다.

     

    손진태 : ‘씨족공동사회-부족사회-부족국가-부족연맹왕국-귀족국가
    이병도(1950) : 나물왕대에 고대국가체제를 이룬 것으로 파악
    김철준(1960) : ‘씨족사회-부족국가-부족연맹-고대국가
    김정배(1970) : ‘군사회-부족사회-군장사회-국가
    천관우 : ‘성읍국가-영역국가
    이기백 : ‘성읍국가-연맹왕국-중앙집권적 귀족국가
    이종욱(1980) : 촌락사회 단계의 사로육촌-소국시대의 사로국-진한소국연맹시대의 사로국-진한제소국정복시대의 사로국을 거쳐 삼국시대의 산라로 발전

    위 논의에서 부족국가(혹은 성읍국가)를 고대국가라고 한다면, 부족국가 이후의 단계는 고대국가 발전단계가 된다. 그러나 고대국가를 국가로 본다면, 그 이전 단계는 국가형성단계라고 해야 한다.

    (중략)

     결국 신라의 왕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 부 중 가장 강력한 부의 장()이었다는 부체제론자들의 주장이 옳지 않음이 삼국사기파사이사금 23년조에서 보여준다. 또한 6부가 자치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를 단순히 왕경의 행정구역으로 보는 견해도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4. 신라사 연구의 과제 및 전망

    올바른 역사연구를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신라상고사의 연구에서는 적어도 그렇지 못하였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으로 고고발굴이 증가하면서 많은 자료들이 축적되고 새로운 연구방법이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신라상고사 연구는 점차 바람직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리라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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